본문 바로가기
텍스트/역사-문화사

중세의 청소년들

by 명랑한 소장님 2021. 1. 27.

 

우리는 청소년기의 문화를 근대성과 연관 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신문에서 거세지는 ‘신세대’ 문화에 대해 우려하는 것처럼 중세 사람들도 청소년들을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시인 존 리드게이트(John Lydgate, c.1370-c.1451)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오~ 젊음으로 빛나는 멋진 청년이여, /..당신이 악의적인 무례함에 휩쓸리려 할 때, /자신을 억제하라.’ 우리는 또한 십 대 너머로 청소년기가 확장된 것을 두고서 평균 연령이 80세까지 늘어난 근대 사회의 업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현저하게 낮았던 중세 후기 때도 어린 시절은 20대 후반과 심지어 30대까지 확장될 수 있는 유연한 범주였다. 그렇다면 ‘중세의 신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은 무엇이었으며, 청소년기가 끝나고 성인기가 시작되는 때는 언제였을까?

 

중세의 청소년기 시작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기는 쉽다. 작가 존 트레비사(John Trevisa)가 말했듯이 그것은 ‘아이를 낳기에 충분한 나이’였으며, 즉 이때부터 사춘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사춘기가 끝나는 시점은 덜 명확하다. 위대한 페르시아 철학자인 아비센나(Avicenna)는 라틴어로 번역되어 중세에 널리 퍼졌던 작품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자라나는 시기를 청소년기라 부르며, 보통 30세까지 지속된다.’ 아비센나는 많은 중세 사상가들이 인간의 삶의 단계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인간 삶의 시기(The Ages of Man)’에 관한 학문에 기여했다. 여기서 ‘인간(man)’은 인류 보편적인 용어일지 모르지만, 여성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13세기 법학자인 헨리(Henry of Bracton)는 여성이 주부로서 책임을 맡을 수 있을 때 성숙기에 이르렀다고 말했지만, 다른 작가들은 여성의 생애 주기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여성은 청소년기를 삶의 전성기라고 믿어 왔다. 그때가 영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육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어린 여성에게 청소년기는 젊음과 동정 모두에서 ‘처녀성’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보통 결혼과 처녀성의 상실은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시기’를 벗어났다고 받아들여 졌다. 간단히 말해서, 소녀들은 대게 남성과 관계를 맺고 가족을 떠나 그의 아내가 됨으로서 여성이 되었다. 반면 소년에서 남성으로의 전환은 더 길고 변화무쌍한 과정이었다.

체액설은 청소년기의 행동과 신체를 연결한다. 청소년기의 남성은 과도한 열과 습기로 인해 성마른 성격, 정욕, 용기, 사교성이 형성된다.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특징은 육체적인 사춘기의 시기를 훨씬 넘어선다고 여겨졌다. 20대 후반이나 30대 후반에 이르면 청소년기의 육체는 식고 충분히 건조해져서 합리적이고 평온해지며, 이로써 그들은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신의 가정을 이끌 준비가 된다.

어떻게 청소년기에 대한 이런 이론적 상상이 실천으로 옮겨갔을까? 법적인 측면에서, 성인기의 시작에 대한 그런 안일한 태도는 가능하지 않았다. 결혼을 할 수 있는 나이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나이와 같이 법적인 목적을 위해선 고정된 나이가 필요했다. 교회법에서 소년은 14세 이후 결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충분히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상속 목적의 합법적 성년은 보통 21세였다.

 

물론 최소 연령에 대한 법적 기준은 만들어져 있었지만, 사회적 관행은 더욱 유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런던의 법률에서 성년은 21세였지만, 상속의 특성에 따라 예외를 두었다. [영국의 법과 관습]에 관한 13세기 논문은 필요한 능력을 갖춘 나이로써 성년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만약 ‘자치도시 시민의 아들이라면 돈을 제대로 계산하는 법, 옷감의 치수를 재는 법을 알며, 아버지의 사업과 유사한 다른 업무도 수행할 수 있을 때, 성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시간의 개념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성숙으로 정의된다.’

 

결혼은 비슷한 의미로 이해되었다. 소년은 교회법에 따른 결혼을 위한 최소 연령으로서 14살에 결혼이 가능한 권리를 갖지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혼 연령은 아니었다. 중세 영국에서 남성의 결혼 연령은 사회 집단에 따라 다르지만, 상류층과 부유한 상인층에선 이른 청소년기의 결혼을 회피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들은 남성은 20대 중반에, 여성은 조금 더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남성이 이른 청소년기에 결혼하는 곳은 아이는 보통 후견인의 보호를 받는 입장이었고, 후견인은 그를 결혼으로 팔거나 (일반적인 중세의 관행이었다) 자신의 아이와 결혼시켰기 때문이다. 귀족이었던 토마스 스토너(Thomas Stonor)는 1470년에 존 코테스모어(John Cottesmore)의 후견권을 구입했으며, 그해 말에 자신의 딸 조안과 코테스모어를 결혼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처럼, 비록 어린 청소년기에 결혼하지만 흔히 이후로도 계속 남편과 아내로서 살지는 않았다는 증거는 많다. 1453년 토마스 클리포드 경은 그의 어린 딸 엘리자베스와 윌리엄 플럼턴 경의 18살 된 아들 윌리엄을 결혼시켰다. ‘윌리엄 경은 엘리자베스가 16살이 되기 전까진 그들이 동침해선 안 된다는 클리포드 경의 말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지침금에 대한 계약은 종종 신부나 신랑이 16세 이전에 사망하면 이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이것은 해당 결혼에서 성관계가 없었음을 암시한다. 중세 사람들은 청소년기의 성적 성숙이 반드시 부모 역할을 위한 육체적 능력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어린 십 대의 아이는 힘도 없고 병약한 아기라고 믿었다.

 

청소년들은 육체적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결혼과 부모 역할은 성장과 탐구 및 학습으로 특징짓는 삶의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남자아이의 경우, 청소년기에 대한 중세 개념은 사춘기라기 보다는 견습기에 더 가깝게 보인다. 성장하는 이 시기는 또한 성인이 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성숙함을 갖추기 위한 책임감을 키우는 시기였다.

 

레이첼 모스(Rachel Moss)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후기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출처-

https://www.historytoday.com/rachel-moss/medieval-millenn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