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은 프로테스탄트로서 가톨릭 교리에 반대하며 종교적, 사상적 자유를 주장했지만, 정작 권위의 자리에 앉자 그러한 관용은 사라지고 독선적인 행보를 보인다. 제네바에서 절대주의 권력을 휘두르던 칼뱅은 자신의 교리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세르베토를 화형에 처하기에 이른다. 프로테스탄트가 비판했던 가톨릭의 이단 심문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칼뱅이 보이자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는 서슬퍼런 칼뱅의 권력 앞에서 세르베토를 변호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전기 소설가다. 그가 역사학자가 아닌 ‘소설가’인지는 책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책이 역사서가 아님을 감안해도 불구하고 굉장히 당혹스러울 정도로 ‘칼뱅은 나쁜 놈’이란 작가의 편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작가답구나(?) 하며 적당히 걸러 읽어야 한다.
아무래도 칼뱅의 뒤만 쫒다보니 당시의 제네바를 둘러싼 정치적, 지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다. 특히 제네바가 한 번 쫒아냈던 칼뱅을 왜 다시 불러들였는지에 대한 부분이 쉽게 납득되지 않아서 좀더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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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파’에 이름이 올라간 칼뱅은 프랑스에서 도망쳐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도시 스트라스부르(Strassburg)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랑스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독일 국경이 폐쇄되어 제네바로 우회해야만 했다.
제네바는 당시 1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주로 직물과 같은 공예업에 종사하는 장인들이 살고 있었다. 칼뱅이 도착하기 전에 제네바는 이웃 사보이 공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자치 공화국이 되었고, 1535년에는 종교개혁을 채택함으로써 가톨릭 교회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제네바 개신교의 주요 인물인 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은 칼뱅이 제네바에 방문하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응한 칼뱅은 1536년 9월에 ‘성서 강독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가톨릭 도시에서 종교 개혁을 위한 도시 공동체로 변모하는 데에는 많은 행정적 업무가 동반되었고, 칼뱅도 이런 실질적인 업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칼뱅과 파렐은 1537년에 구속력 있는 개혁된 신앙 고백과 제네바 사회 전반에 걸친 청교도적 도덕 규율을 도입할 것을 제네바 공화국의 통치 위원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 조례들은 교회와 국가 사이의 충돌 가능성이 너무 컸다. 강압에 분노한 시민들은 카렐과 캘뱅에게 교회 독재라고 비난했고, 1538년 2월에 반칼빈 의회가 선출되었다. 1538년 부활절 직후에 이 프랑스 개혁자들은 갑작스럽게 추방되었다. 칼뱅은 원래 목적지였던 스트라스부르로 떠났다.
칼뱅이 떠난 후 제네바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정치 계급 사이에 살인과 처형이 자행되면서 도시의 안정과 질서를 위협했다. 제네바 독립의 주요 후원자이자 강력한 프로테스탄스 세력인 스위스 도시 베른과의 외교적 어려움도 있었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제네바 종교개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1539년 3월 온건한 가톨릭 고위 성직자인 자코포 사돌레토 추기경은 제네바의 통치 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다시 로마 가톨릭 교회로 돌아올 것을 설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칼뱅은 사돌레토의 주장을 반박했다. 때마침 제네바의 지도자들과 시민들도 칼뱅의 리더십이 도시에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칼뱅은 제네바와의 협상 끝에 귀환하게 되었다.
제네바는 자신들의 아쉬움 때문에 칼뱅을 다시 불러들인 터라 주도권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칼뱅은 단순히 떠나겠다는 위협만으로도 저항을 쉽게 무마할 수 있었다. 칼뱅이 권좌에 오르는 데 기여한 또다른 요인은 제네바의 지리적 위치였다. 제네바는 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유럽의 교차로이자 스위스에서 호수를 건너면 바로 이탈리아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이 덕분에 제네바는 칼뱅의 복음이 프랑스로 향하는 선교의 화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 온 참된 신자들을 끌어들이는 자석과도 같은 도시가 되었다. 칼뱅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으며 칼뱅의 존재를 자연 질서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제네바 토박이들이 점차 시민권을 획득하고 그에 따른 투표권을 확보하면서 종교개혁자의 대의는 선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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