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레블 리지>. 마을 경찰들이 부패했다. 자전거로 버스와 속도를 견줄 정도로 유산소왕 인간 병기 테리도 그 부패한 경찰 앞에선 무기력하다. 상대가 테러리스트였다면 진즉에 척추를 접어버리고, 머리에 바람구멍을 냈을 텐데. 뿜뿜거리는 근육을 진정시키고 그저 두 손 모아 공손히 강탈당한 돈의 일부만이라도 돌려달라며 예의 바르게 말하는 게 전부다. 어쨌건 그들은 법의 빈틈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테리의 돈을 강탈한 거였으니까. 최근에 아파트에 붙어있던 불법 전단지를 뗐다고 경비원과 여중생을 검찰로 넘겨버린 경찰처럼 말이다. 따지고 들면 정당한 권리를 다시 찾을 수야 있겠지만, 그 많은 돈과 시간, 감정적 소모를 감수할 수 있는 시민은 많지 않다.
종종 범죄 현장에서 무기력한 우리 경찰의 모습을 보며 더 강경히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공권력이 아무리 핫바지로 보여도 민간인이 공권력을 이길 수는 없다. 그 순한 양 같은 경찰도 노동자와 시민들의 시위 앞에서는 끔찍한 폭력성을 보이지만 시민들은 이를 저지할 수 없다. 우리가 대항하는 건 처벌 대상이지만, 그들이 행하는 폭력은 법 집행 과정으로 정당화된다. 우리가 공권력을 엄격히 규제하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다.
경찰서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온 테리가 말한다. 그들이 찔리는 게 있으니까 조용한 거지 아니었다면 벌써 경찰 특공대가 지붕을 뚫고 내려왔을 거라고. 시위 앞에 늘 폭력적인 우리 경찰도 극우 시위대를 상대로는 유독 얌전해지는 건 찔리는 게 있어서일까?
테리는 끝내 단 한 명의 경찰도 속시원히 줘 패지 못한다. 다만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의도적으로 미운털을 몰아준 경찰 한 명의 팔만 부러트렸을 뿐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문제는 해결된다지만, 영화는 내내 감자를 먹은 듯 답답하다. 지금 우리의 사법부를 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