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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과학-과학사

사실에 대한 짧은 역사

by 명랑한 소장님 2024. 3. 3.

일러스트 김명호

 

'사실(fact)'이라는 개념은 르네상스 라틴어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이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60년대에 이르러서다. 1660년 11월에 설립된 왕립 학회는 실험에 기반한 지식에 전념했으며, '설명이 아닌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은 17세기에 등장한 지식을 논하는 현대 어휘의 일부가 되었으며, 여기에는 이론, 가설, 증거, 실험 등이 포함되었다. 이 모든 단어들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다른 의미였다. 예를 들어, '실험(experiment)'은 단순히 '경험(experience)'을 의미했다.

 

사실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함께, 사실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발전했다. 데이비드 흄(1711-76)은 최초의 '사실의 철학자’였다. 흄은 사실이 ‘필연적 질리’와는 별개의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모든 각의 합은 두 개의 직각의 합과 같다는 것은 필연적인 진리다. 반대로 사실은 필연적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이다. 즉,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이름은 ‘데이비드’다. 부모님은 ‘존’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데이비드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이 참이라는 것은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이론과 가설은 대안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에는 대안이 없다. 성공적으로 논박된 사실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지만, 성공적으로 논박된 이론은 계속해서 이론으로 남는다. 

 

현실 세계에 대한 참된 진술이 항상 존재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진술을 분류하는 범주가 항상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항상 고민해 왔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는 하늘에서 화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로써 대략적인 수치가 아닌 정확하게 그 궤도를 계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집착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그리스어 문구를 사용했다. 그는 hoti, 즉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참되고 정확한 진술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사실’이라는 단어와 그것이 참인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 왜 중요할까? 한 가지 이유는 사실이 존재하기 전에는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나 로마의 중요한 저자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계란을 줄과 주머니로 만든 도구인 슬링(sling)에 넣고 빙글빙글 돌려서 익혔다거나, 마늘이 자석의 힘을 약화시킨다거나, 다이아몬드를 가루로 부술 수 없다거나, 배는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물 위에서 더 높이 뜬다거나, 신경은 심장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참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17세기에는 이같은 주장이 일상적으로 기각되었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달걀과 슬링, 그리고 힘쎈 청년들이 있다. 우리가 슬링을 돌려서 계란을 익힐 수 없다면 바빌로니아 사람들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의 핵심은 사실이 권위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식에 모인 대중이 역대 최대 규모였다고 말했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실’이란 개념이 발명되기 전에는 우리가 완전히 부적합하다고 여길 우연한 참된 진술에 대한 논쟁들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로마법에서는 가십, 소문, 명성이 유죄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며, 법정에 제출되어 결과를 결정할 수 있었다. 증거의 가치는 피고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남성의 증거는 여성의 증거보다, 신사의 증거는 노동자의 증거보다 선호되었다. 17세기 영국 법에서 배심원은 여전히 자신의 지역적 지식과 배경을 바탕으로 사건을 판단해야 했다. 

 

권위가 쇠퇴하고 사실로 대체된 이유는 뭘까? 17세기에는 정보의 본질이 바뀌었다. 정보의 신뢰성이 높아지면서 권위는 점점 더 약해졌다. 정보가 정확한지 판단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규칙이 확립되었다. 목격자의 증언이 중요해졌고, 실험을 반복해야 했으며, 보고서를 인용하고 비교해야 했다. 인쇄술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방대한 양의 정보가 제공되면서 새로운 회의론이 생겨났다. 출처를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었고, 새롭고 정확한 정보가 오래되고 부정확한 정보를 대체할 수 있었다. 지식은 발전할 수 있따는 확신을 바탕으로 사실이 발전했다. 갈릴레오는 17세기에 교수로 재직할 때 13세기의 교과서로 천문학을 가르쳐야 했다. 17세기 말에도 옥스퍼드 교수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로 자연 철학을 가르쳐야 했다. 이러한 낡은 권위는 필사본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쇄술이 등장하며 휩쓸려 갔다. 

 

현재 우리는 정보가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견고했던 모든 것이 공기 중으로 녹아내렸다. 인쇄물의 시대에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능력과 관심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웹사이트에 접속한 날짜나 방문한 웹사이트에 따라 사실이 달라진다. 정보의 성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나는 2월 7일 화요일에 특정 국가들로부터의 미국 여행 금지 행정명령에 대한 항소 법원 심리를 방청했다. 한 가지 쟁점은 이 금지령이 무슬림을 차별하기 위한 것인지 여부였다. 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해 이 행정명령의 기저에 인종차별적 동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변호사들은 대통령이 내린 행정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데 신문 기사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판사는 정부가 신문 기사가 허위임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를 제시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그 증거를 무시하고 넘어가길 원했다. 그들은 법원이 행정명령의 문안에만 국한하기를 원했고, 그 문안 너머를 들여다봐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실에 대한 호소가 권위에 대한 호소에 의해 ‘압도’되기를 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우리가 더 이상 사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대통령은 주류 언론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그와 동시에 언론은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사실과 (켈리앤 콘웨이의 악명 높은 표현을 빌리자면) ‘대안적 사실(1)’이 존재하게 되었다. 사실이 유동적이 되면서 논쟁의 여지가 생기게 되고, 진실은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것이 되었다. 과거에는 전체주의 정권이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사실을 조작하는 것이 특징이었다면, 이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법원이 2월 9일 판결에서 지적했듯이, 정부는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행정명령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반복해서 주장했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법원은 디지털 시대에 약화되고 있는 신뢰성과 증거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2). (김명호 옮김)

 

-원문-

David Wootton. A Brief History of Facts. History Today. Feb 13, 2017.

 

-각주-

(1) 켈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는 미국의 정치 컨설턴트이자 여론조사 전문가로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캠페인 매니저를 역임했고, 당선된 후에는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그녀의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표현은 2017년 1월, NBC의 "Meet the Press" 프로그램에서의 인터뷰 중에 등장했다. 당시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역사상 가장 많은 군중이 참석했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미디어에 의해 반박되었다. 콘웨이는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백악관이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되었으며,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정치적 수사법으로 널리 비판받았다. 

 

(2) 이람교도가 다수인 국가들로부터의 여행 금지를 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2017년 초에 발표되었고, 행정명령은 종교에 기반해 차별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여러 연방 법원에 의해 긴급 중단되었다. 데이비드 우튼의 이 글은 그 즈음 게재되었다. 그의 바램과 달리 결국 2017년 6월에 미국 대법원은 행정명령 일부를 유효하다고 판결하면서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대법원은 행정명령이 모든 부분에서 합법적이라고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행정명령의 일부 조항이 시행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이후 2018년에 대법원은 행정명령의 세 번째 버전을 완전히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트럼프의 임기 동안 이 행정명령이 시행되었지만, 2021년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