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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과학-과학사

치매를 변호하다

by 명랑한 소장님 2023. 11. 23.

일러스트 김명호

 

범죄 행동이 퇴행성 인지 질환과 겹치면서 사법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데이비드 로스먼은 2003년에 62세의 나이로 산부인과를 폐쇄했다. 몇 년 후 그는 HIV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메드코어(Medcore)라는 새로 개원한 클리닉의 의료 책임자가 되었다.

 

레예스 크루즈는 1994년에 HIV 진단을 받고, 2005년 여름에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 그는 위경련과 잇몸 출혈, 설사가 있다고 로스먼에게 말했다. 로스먼은 그의 입 안을 들여다보고 맥박을 잰 다음 복부를 눌렀다. 혈액을 뽑은 후 트루즈는 방문 확인서에 서명하고 현금 600달러를 받았다. 크루즈는 거의 1년 동안 정기적으로 메드코어를 방문하여 매번 600달러를 받았는데, 때로는 병원 화장실이나 주차장에서도 받았다.  

 

크루즈는 나중에 질병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 클리닉은 사기였다. 병원장은 HIV 감염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가짜 환자로 위장시켰다. 로스먼은 클리닉에서 구매한 적 없고, 환자에게도 제공한 적 없는 HIV 약품에 대해 건강보험 청구서에 서명했다. 약 2년에 걸쳐 메드코어는 건강보험에 허위 비용으로 4,040,895달러를 청구했다. 은행 기록에 따르면 로스먼은 메드코어를 비롯해 기타 유사한 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최소 6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FBI 요원들은 2008년 10월에 로스먼과 다른 7명을 체포했다. 로스먼은 의료 사기 및 공모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최대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기소된 피고인 중 4명이 유죄를 인정했고, 로스먼을 포함한 4명은 재판을 받기로 했다. 

 

배심원단이 구성되기 직전에 로스먼의 변호사는 의뢰인이 재판받을 능력이 없다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로스먼은 체포되기 5개월 전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그 후 소송은 11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치매 환자를 처리할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값비싼 사례였다. 

 

65세 이상 미국 성인의 약 10%가 어떤 형태의 치매를 앓고 있으며, 또 다른 22%는 가벼운 인지 장애를 앓고 있다. 가장 흔한 유형인 알츠하이머는 방황, 방향 감각 상실, 기억력 감퇴, 올바른 단어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 등 노인의 인지 기능 저하와 연관되는 증상을 보인다. 전측두엽 치매의 경우 충동적이 되거나 공감하는 능력을 잃을 수 있다. 루이소체치매(Lewy body dementia)는 떨림을 유발하고 수면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 혈관성 치매 환자는 환각을 볼 수 있다.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진단이 까다로울 수 있다. 

 

일부 치매는 사회에서 범죄로 분류하는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치매 상태가 법을 위반하려는 의도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치매 관련 위반 행위는 신경과 전문의들이 ‘도구적 행동(instrumental behaviors)’이라 부르는, 미리 계산하고 계획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동과 태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사회적 규범에 대한 감각이 사라질 수 있다. 그들은 훔치고, 더듬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대부분 충동 조절 문제와 끔찍한 판단력을 갖게 된다. 

 

사람의 인지와 행동에서 나타나는 이런 급격한 변화는 세상에 대한 인식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심리학자들이 마음 이론이라고 부르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치매 환자는 자의식 정서(self-conscious emotions: 타인의 반응 또는 자신의 자각에 의하여 느끼는 질투, 자신감, 당혹감 등 자기 자신에 대한 정서)나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보는 능력”도 상실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이 사라지면 사회적 패턴을 깨는 것에 대해 더이상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이러한 능력의 상실은 알츠하이머 환자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범죄인 공공장소에서의 배뇨, 절도, 교통 위반, 성추행 및 무단 침입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치매환자가 범죄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매 진단을 받은 사람은 그러한 행동에 더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FBI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에  65세 이상의 치매 환자가 10만 명 이상 체포되었다. 이는 미국 전체 65세 이상 인구의 약 0.18%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에 비교하여,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기억 및 노화 센터에서는 진료받은 환자 중 8.5%가 진단을 받은 후 범죄를 저질렀다. 

 

대부분 치매 관련 범죄는 유죄 판결을 받아도 감옥이나 배심원 앞에 서지 않는다. 유죄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과 범죄를 의도했다는 것이다. 후자인 범죄 의도(mens rea)는 치매 환자가 법을 위반했을 때 일반적으로 빠지게 된다. 경찰, 피해자 또는 검사가 피고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일반적으로 기소는 취하된다. 

 

그러나 신경 퇴행성 장애로 앓으며 범죄를 저지른 노인 중 일부는 결국 수감된다. 2021년에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67세 남성이 차를 훔친 혐의로 교도소에 몇 달간 수감되었다. 이 남성은 경찰관이 왜 차를 세우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감되었다. 

 

조지아 주립대학교 공중보건대학에서 보건 정책 및 행동 과학을 연구하는 자레인 아리아스(Jalayne Arias)는 치매로 인한 범죄로 체포된 사람들을 변호사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치매가 범죄 행위의 원인이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15명의 변호사를 인터뷰했으며, 이들의 답변(미국 법률 및 의학 저널에 곧 게재될 예정)은 아리아스에게 형사 사법 시스템이 노인 범죄자의 치매를 선별하기 위한 일관된 접근 방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경찰은 방금 체포한 용의자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가장 가까운 지구대나 응급실 외에 그를 데려갈 곳이 없다. 아리아스가 인터뷰한 변호사들은 낯선 장소와 상황에 처하는 것만으로도 치매 환자에게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감옥과 교도소는 임상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 간병인이 없는 범죄자는 장기 요양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현재 범죄 기록으로 인해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 아리아스는 "우리 법률 시스템 전체가 이 특별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피고인은 심신 미약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거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인지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에게는 이러한 보호 장치가 없다.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는 사기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다. 그들은 건강보험을 속이기 위해 가짜 클리닉을 시작하지 않는다. 이러한 범죄는 뇌 질환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FBI는 2005년 12월에 메드코어와 관련하여 로스먼에게 연락했다. 그 달 말, 로스먼은 대배심에서 증언했다. 그의 딸 라켈 로스만은 그 후 아버지가 정장을 입고 여동생의 집에 나타나서야 증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차려입었냐고 묻자 아버지는 무심하게 어디 갔다 왔다고 말했다. 변호사인 라켈은 아버지가 변호사 없이 증언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대배심 심리의 세부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라켈은 즉시 아버지의 전 사교클럽의 절친한 친구였던 조엘 허쉬혼에게 연락했다. 허쉬혼은 1980년대 마이애미에서 마약상을 변호했던 화이트칼라 변호사였다. 허쉬혼이 로스먼을 만났을 때 그가 그억하는 예리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허쉬혼은 로스먼에게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줬다. 그 의사는 로스먼을 신경심리학자에게 소개했고, 신경심리학자는 2007년 3월 로스먼에게 경도 인지 장애를 진단하고 추가 검사를 위해 신경과 전문의에게 그를 보냈다. 첫 진료를 받은 지 2년이 지났고, 기소되기 두 달 전인 2008년 5월, 신경과 전문의는 로스먼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진단을 내렸다. 

 

미국 수정헌법 제6조에 따르면 모든 형사 피고인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여기에는 피고인이 소송 절차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도 포함된다. 증거를 이해하고, 증인석에 서는 것의 이득과 위험을 따져보고, 형량 협상을 고려하고,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계속하는 등 재판에서 요구되는 인지적 요구는 상당하며, 변호사는 피고인의 심리를 조사하는 역량 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 

 

피고인의 역량과 관련된 최신 규정은 1958년 밀턴 더스키(Milton Dusky)라는 33세 남성이 미성년자 유괴 혐의로 기소된 더스키 사건(Dusky v. United States)에서 유래했다. 더스키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지만 법원은 그가 형법 절차를 처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4~5년형을 선고받았다. 첫 번째 항소가 실패한 후, 대법원은 1960년에 이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이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와 처벌을 이해하고 자신의 변호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더스키 기준(Dusky standard)’을 도입했다. 

 

더스키 기준은 모든 신경학적 질환에 적용된다. 이 법은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과 같이 약물 치료로 호전될 수 있는 정신 질환과 치매와 같이 치료가 불가능한 정신 질환을 구분하지 않는다. 

 

피고가 더스키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법원은 전문가를 지정하여 법의학적 평가를 실시한다. 이런 조사는 의사가 인지 장애를 검사하는 데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도구를 사용한다. 먼저 비타민 결핍, HIV, 요로 감염 등 치매의 다른 원인을 배제하기 위한 생물학적 검사를 실시하는데, 이는 모두 치료 가능하므로 이해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평가자는 뇌 내부의 손상(erosion) 징후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 스캔을 지시할 수도 있다. 

 

치매 인지 테스트에는 기억력, 인식력, 언어 회상, 실행 기능 및 기타 두뇌 능력을 확인하는 질문이 포함된다. 환자에게 현재 머물고 있는 도시와 주의 이름을 묻거나 특정 시간을 가리키는 바늘이 있는 시계를 그리도록 요청할 수 있다. 평가자는 속담의 의미를 설명하도록 요청하여 환자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테스트할 수 있다. 임상 환경에서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 목표다. 법의학적 환경에서는 피고가 법적 전략을 계획하고, 법정 절차와 예의를 이해하고, 자신에 대한 혐의를 이해하고, 증인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 결과에 대해 관심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목표다. 

 

역량 평가는 미국 사법 제도의 기본 원칙, 즉 법을 위반한 사람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과 연결되기 때문에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사실을 완벽히 기억하지 못해도 변호사와 상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충분하며, 기억상실증에 걸린 피고인에게도 유능하다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뉴욕대학교 랭곤 기억력 평가 및 치료 센터의 톰 위스니에브스키 소장은 "대부분의 법적 환경에서 경미한 인지 장애나 초기 치매는 범죄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에는 불충분합니다."라고 말한다. 

 

재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인지 테스트는 테스트가 실시되는 순간의 상태만을 말해주기 때문에 치매가 일주일 또는 하루 동안 주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변동은 포착하지 못한다. 

 

따라서 테스트는 감정 상실이나 억제력 상실을 놓칠 수 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증상을 과장할 수 있다. 따라서 법의학 및 임상 평가자는 가족과 친구도 면담한다. 피고인의 병력을 아는 사람만이 시간에 따른 행동 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환자의 인지 평가는 정보 제공자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집니다."라고 위스니에브스키는 말한다. 

 

허쉬혼이 로스먼에 대한 역량 평가를 요청하자 판사는 지역 신경심리학자인 엔리케 수아레즈에게 이를 맡겼다. 수아레즈는 2009년 2월 동안 이틀에 걸쳐 로스먼에게 네 가지 인지 테스트를 실시했고, 일반적인 알츠하이머 환자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적인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로스먼은 인지능력보다 회상력이 더 좋았다. 그는 단어 목록 회상 테스트에서는 평균 점수를 받았지만, 몇 분 전에 본 것을 인식했는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평균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두 단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테스트에서는 같은 단계의 알츠하이머 환자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의 IQ 점수는 85점(90~109점은 평균으로 간주됨)이었는데, 이는 로스먼과 같은 교육적, 직업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수치였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신경심리학자가 시행한 테스트에서 그가 받은 점수보다 20점이나 낮았다. 수아레즈는 로스먼이 지난 15년 동안 환청을 겪었다고 밝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로스먼은 의사에게 환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아레즈는 가족 구성원 중에선 라켈만 면담했다. 법원 기록에는 그가 로스먼과 17년간 부부 관계였던 아만다 로스먼을 면담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이 없다. 또한 로스먼과 라켈이 10대때부터 소원했기 때문에 라켈이 아버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누락되어 있다. 

 

판사 앞에서 열린 역량 평가에 대한 심리는 수아레즈의 평가 일주일 후에 열렸다. 2006년부터 로스먼을 진료한 모든 임상의들은 판사에게 그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검사 결과와 영상 보고서, 결론을 제출했다.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한 수아레즈를 제외하고는 모두 로스먼이 무능력하다고 말했다. 수아레즈는 로스먼의 테스트 점수가 일관성이 없었고, 때로는 너무 낮아서 한 가지 결론만 내릴 수 있었다. 수아레즈는 로스먼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속이고 있었다. 

 

가간테 사건(United States v. Gigante)은 아마도 가장 유명한 꾀병 사건일 것이다. 제노바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기간테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척하며 누더기 옷을 입고 거리를 걸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는 1990년에 체포된 후 수년간 유죄 판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이같은 행동을 했다. 마침내 판사는 그에게 재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결했고, 1997년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기간테는 감옥에서 사망하기 몇 년 전에야 자신의 계략을 인정했다.)

 

누군가 병을 가장하고 있다는 것을 판별하는 것은 정확한 과학적 방법으로도 어렵다. 평가자들은 종종 틀릴 수 있다. 기간테와 같은 꾀병은 드물다. 뉴욕주에서 형사 사건을 자문하는 법의학 정신과 전문의 로리 호탈렌은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수도 있고, 치매에 걸렸을 수도 있으며, 과장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꾀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수아레즈의 증언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수아레즈는 로스먼이 꾀병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로스먼이 2005년에 자신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 왜 치료를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는 로스먼이 "정신 질환이나 결함"을 앓고 있지만 법적으로 무능력하게 만들 정도로 인지능력이 손상된 정도는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의사에게 자신의 결백을 설명했으니 배심원단 앞에서도 똑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판사는 로스먼이 재판을 진행할 능력이 있다고 판결했다. 

 

판사는 로스먼의 알츠하이머 진단이 메드코어 계획에 참여하는 데 기여했다는 전문가 증인의 증언을 허용하지 않았다. 임상적으로 치매가 사람의 뇌에 언제 처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지, 또는 언제부터 사람의 공감 능력이나 억제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률 시스템은 그가 허위 건강보험 양식에 서명할 당시의 정신 상태를 소급하여 판단할 수 없었다. 

 

소송은 2009년 3월부터 2주간 진행되었다. 허쉬홈은 로스먼의 범죄 행위를 알츠하이머병 탓으로 돌리려 하지 않았지만, 일을 수행하는 기능의 문제로 인해 로스먼이 메드코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첫 진술에서 로스먼을 “판단력이 극도로 저하된 늙은 바보”라고 언급했다. 나중에 그는 배심원단에게 로스먼이 HIV 환자를 제대로 돌보려고 노력하는 헌신적인 의사였다고 주장했다. 로스먼은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선량한 의사였다는 것이다. 

 

배심원단은 로스먼의 5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평결했고, 검찰은 135개월(11년 이상)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로스먼은 50만 달러의 보증금을 내고 6월 선고 공판이 열릴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가 되었다. 

 

심리 열흘 전, 허쉬혼은 새로운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는 로스만이 법원의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단계에서도 더스키 기준은 적용되는데, 피고는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완전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메드코어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판사는 로스먼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라켈 로스먼을 긴급 임시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더스키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경우, 수행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허용된다. 법에 따라 피고는 교도소 병원이나 외래 진료소에 강제 입원하여 상태에 맞는 적절한 치료와 형사 사법제도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배심원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탄원서란 무엇인가요?" 등의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배심원들이 법정에 복귀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사건이 재개된다. 

 

하지만 복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치매는 돌이킬 수 없으며 회복할 수 없다. 알츠하이머에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은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멈추거나 되돌리지는 못한다. 2021년 6월에 승인된 경증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아두카누맙은 그 승인으로 이어진 임상시험에서 증상 개선이 나타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2023년 1월에 승인된 레카네맙 역시 증상을 되돌리진 못한다. 우드는 “치매는 점점 더 악화될 뿐”이라고 말한다. 

 

즉, 알츠하이머 환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회복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일대학교 정신과 의사이자 전 법의학 정신병원의 최고 의료 책임자였던 토비아스 바서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일반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허쉬혼의 평가 요청에 따라 판사는 마이애미 마운트 시나이 메디컬 센터의 알츠하이머병 및 기억장애 빈 센터를 이끌고 있는 신경과 전문의 란잔 두아라가 역량 심사를 담당하도록 지정했다. 두아라는 2009년 8월 법원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두아라는 로스먼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았고, 정신병도 앓고 있지 않다고 기록했다. 그는 전두측두엽 치매(frontotemporal dementia)를 앓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타고난 윤리적 나침반이 있다. 뇌의 내측 전두엽과 전측 측두엽은 도덕적 질문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전적인 트롤리 문제는 이 기능을 활용한다. 기차가 5명의 사람이 묶여있는 선로를 향해 가고 있는데, 1명만 묶여있는 곳으로 진로를 바꾸겠습니까? 멘데즈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다고 느끼게 되면, 더 나은 일과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행동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라고 말한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이런 도덕적 회로를 공격한다. 공감하고, 자의식을 느끼게 하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을 약화시킨다.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는 도둑질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상점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스카프를 가져가는 것이 잘못인지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멘데즈는 말한다. 전두측두엽 치매가 평판 좋은 산부인과 의사로 하여금 건강보험을 속이기 위해 정교한 사기를 계획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사기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치매 환자의 높은 범죄율을 확인한 한 연구에서 그 비율은 171명의 환자 중 64명, 즉 37%에 달하는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 하위 집단에서 가장 높았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도덕적 규칙과 관습을 아는 능력을 유지하면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라고 멘데즈는 언급한다. 

 

두아라는 로스만이 메드코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후회도 하지 않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두아라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판단에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MRI 검사 결과 로스먼의 귀 바로 뒤쪽 뇌 영역인 측두엽의 앞부분이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두아라는 "뇌에 퇴행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아라가 이전 전문가들의 평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검찰은 더 자세한 평가를 요청했다. 판사는 로스먼을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 있는 연방 의료 센터로 보내 10일간의 평가를 받게 했다. 그곳의 심리학자들은 로스먼이 자신의 증상을 속이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평가자들이 치매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판사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2010년 8월, 로스만이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7개월이 지난 후 판사는 로스먼이 심신 미약으로 선고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로스먼이 선고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원했다. 로스먼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뷰트너에 있는 교도소 의료 시설에서 감정을 받았다. 이 시설은 법의학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곳이다. 로스먼의 평가를 담당한 법의학 심리학자가 제공한 보고서에 따르면, 로스먼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6월 10일,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 즈음 로스먼의 아내는 이혼을 신청했다. 라켈 로스먼은 아버지를 마이애미의 한 양로 시설로 옮겼다. 그녀는 아버지의 보호관찰관에게 매주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시설에 있고 그의 소재에 대한 제한을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결국 치매는 형태를 바꾸는 병이다. 두아라는 로스먼의 주치의로 남아 8년 동안 미국 법무부에 수십 건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2016년 그는 PET 스캔을 통해 로스먼의 뇌를 다시 살펴본 결과, 전두측두엽 치매를 모방하고 판단력, 통찰력, 실행 능력에 문제를 일으키는 변종 알츠하이머병과 더 일치하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2019년 법무부는 로스먼에 대한 소송을 기각해 달라는 요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이에 동의했다. 가장 최근인 2023년 1월에 로스먼을 진료한 두아라는 그가 “중간 정도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라켈 로스먼에 따르면 아버지는 더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고, 말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로스먼이 반드시 어떤 부당함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사법 시스템이 잘 작동했거나 혹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을 피했을 수 있다. 공정하고 신중한 판사나 정말 훌륭한 변호사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치매 피고인들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뉴욕대학교 랭곤 헬스에서 치매를 치료하는 위스니에브스키는 불필요한 마약성 약을 처방해 결국 15년 동안 감옥에 갇힌 한 환자(의사)를 떠올렸다. “그 환자는 5년이 지나서야 겨우 자신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계속 수감되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치매 환자는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다뤄집니다.”

 

전문가들이 제안한 해결책 중에는 인지 장애가 있는 노인에게 청소년 법정과 동등한 법적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이 있다. 청소년 법정은 청소년의 뇌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과 다른 법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연방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는 법무부가 주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법무부는 범죄자인 치매 환자를 돕기보다는 사기꾼과 같은 범죄자로부터 치매 환자를 보호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주 정부는 정치적 의지에 발목이 잡혀 있다. 또다른 방안은 “치매를 이유로 무죄”라는 항변을 허용하거나, 청소년을 종신형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유사한 형량 제한을 제정하는 것이다. 

 

법무부 통계국은 교정 시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때 치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지 않기 때문에 치매를 앓고 있는 수감자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다. 2012년의 한 연구에서는 교도소의 유형과 규모에 따라 수감자의 치매 발병률이 1~4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령 인구의 치매 유병률을 고려할 때, 그 수치가 어떻든 간에 증가 추세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013년 주 교도소 수감자 중 5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0%로 20년 전에 비해 7% 증가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는 55세 이상의 인구가 미국 교도소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증가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 정부가 사형을 금지했을 때 종신형이 더 흔해졌고, 금지가 해제된 후에도 종신형은 줄어들지 않았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치매 진단이 증가하고 있다. 운동 부족과 교도소 생활의 심리적 혼란은 특히 다른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경우 고령 수감자의 인지 기능 저하를 악화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교정 시스템에서는 노인 또는 치매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2019년 매사추세츠주 데븐스 연방 메디컬 센터에 문을 연 교도소 기억력 병동과 같은 시설은 취약한 수감자의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은 모순을 야기한다. 교도소가 재활을 위한 것이라면, 그곳에 왜 갇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계속 가둬둘 필요가 있을까? 치매 환자를 감금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김명호 옮김)

 

-출처-

Jessica Wapner. The Dementia Defense. Scientific American. Sep 9. 2023.